옷을 벗고 살아도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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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79 2017.06.0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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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: 정한영 첨부파일 : |
옷을 벗고 사랑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.
淨 山 김 용 관
오늘 나는 예사롭게만 봐 왔던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.
현재 절에 묶고 있지만 나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, 그렇다고
그 흔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.
어느 종교도 내 머리에는 없다.
다만 있다면 다 뭉뚱거려 용해시켜 받아드리고 있을 뿐이다.
그것이 내 마음이고 종교관이다.
그저 글이 좋아서 글을 쓰려고 조용한 공간을 찾다보니
절만한 곳이 없어서 들어와 있다.
여름 끝이라 오후 2~5시 사이에는 뜨거운 햇볕이 방 안으로 들어와
아무 글도 못쓰게 만든다.
이렇 때는 옆에 있는 산으로 가 잠시 휴식을 갖는다.
지금까지 무심코 지냈던 나무들이 오늘은 내게
길 안내를 해 주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.
2000년에 작고한 황순원의<나무들 비탈에 서다>라는
소설 제목이 연상 되었다.
평지에도 나무가 있고 비탈진 계곡에도 나무 들이 서 있다.
누가 <너는 비탈진 계곡에서 살라.> 하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
평지의 나무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자라고 있다. 비탈진 곳에서
몸을 가누기에 힘이야 들겠지만 불평 불만도 없이 평지의
나무와 견주어 가면서 잘 자란다.
목수는 재목 감으로 평지에 있는 것만을 고르지 않는다.
비록 비탈에 서 있는 나무지만 목수가 팰요한 나무라면 후한
대접을 받으며 목수 손에 끌려 갈 것이다.
아니 그 나무도 한 생애를 평지에 있는 나무와 같이
편안하게 누리고 있다.
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 까.
현재는 못 먹고 못 살고 힘든 생활이지만 꿋꿋하게 살다보면
잘 먹고 잘 사는 때가 있을 것이다.
역으로 생각하면 더 오래 생명을 유지도 할 수 있다.
맹자의 곡즉시전(曲卽是全)이 여기에 맞는 말 일 것이다.
화목이나 재목은 곧은나무를 먼저 고른다. 처진 것은 굽어있는 나무다.
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기에 온전하게 오래오래 지속 된다는 말이다
곡즉시전이 중요한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.
비탈진 계곡에서 자라는 나무지만 평지의 나무보다 더 곧고 굳게
자라는 나무가 타산지석이 된다는 말이다.
누군가 손에 이끌려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기둥이 아니고,
그늘진 곳에 습기만 진뜩 먹고 있는 나무라 하여도 모두 위치만
다를 뿐 하는 일은 같다.
보이는 이야기를 열 사람이 한다. 해도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칭찬이
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.
그 구성은 나 하나가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보이는것만 말한 뿐이니
비록 오늘 옷을 벗고 살아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.
2007,8,22 청주 보현사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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